이제부터 '광기의 역사'에 대한 리뷰를 시작할게요.
'광기의 역사'는 미셸 푸코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인간의 정신과 사회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탐구하는 중요한 이론서에요. 이 책은 광기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와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어요.
미셸 푸코의 생애와 작품
미셸 푸코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로, 20세기 후반의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이에요. 그의 작업은 권력, 지식, 주체성 등의 문제를 다루며, 특히 정신병학과 관련된 연구는 그가 얼마나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깊이 이해했는지를 보여줘요. 푸코는 광기와 사회의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하면서, 시대에 따라 광기가 어떻게 정의되고, 그에 따라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조명하고 있어요.
책의 주요 내용 분석
'광기의 역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요. 첫 번째 부분에서는 중세 시대부터 19세기까지 광인들이 어떻게 대우받았는지를 살펴보며, 당시 사회의 시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줘요. 사람들이 광인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죠.
두 번째 부분에서는 정신병원의 역사와 그 운영 방식을 다룹니다. 푸코는 이 과정을 통해 정신병원이 어떻게 권력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요. 이 책을 읽다 보면,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여겨지던 정신 질환이 사실은 사회적 맥락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돼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분에서는 19세기 이후의 광기와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분석해요. 이 부분에서는 현대 사회에서의 정신병 치료와 그에 대한 인식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며, 개인의 고통이 사회적 구조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탐구하죠.
광기와 사회의 관계
푸코는 광기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한정짓지 않아요. 그 대신, 광기는 권력과 지식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탐구하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논의슈에요. 현대 사회에서도 정신 질환에 대한 낙인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는 사람들이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얼마나 부담을 느끼는지를 보여줘요. 푸코의 관점은 이렇게 현대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죠.
독서 후 느낀 점
개인적으로 '광기의 역사'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책이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정신 건강 문제를 깊이 있게 성찰하도록 만든다는 거예요. 푸코는 그가 다루는 모든 사건과 이론이 단순히 과거에 국한되지 않고,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임을 상기시켜줘요.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개인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에요.
추천 도서 및 관련자료
'광기의 역사'를 읽고 나면 푸코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해요. 특히 '감시와 처벌'이나 '주체의 문제' 같은 책들이 좋을 것 같아요. 또한, 관련된 논문이나 저널도 많이 있으니, 정신병리학적 접근에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길 권장해요.
마무리 및 독자 의견 수렴
여러분도 '광기의 역사'를 읽어보셨나요? 이 책이 여러분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궁금해요. 푸코의 통찰력이 여러분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를 바래요.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광기의 역사 책 표지
광기(狂氣)의 역사(歷史) 첫 번째 권 표지
🌹광기의 역사 제1부
💋제1장.(요약본)
나병의 소멸과 사회적 의미
- 나병의 소멸 원인:
- 나병의 기이한 소멸은 모호한 의료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인다.
- 십자군 전쟁 이후 근동지방과의 교류가 단절되면서 나병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 나병의 존재 의의:
- 나병은 단순히 질병이 아니라, 신성 불가침 영역 안에 존속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 나병을 없애기 위한 의례는 남아 있었으나, 나병 자체는 물러났다.
- 사회적 이미지와 가치:
- 나환자라는 인물에 달라붙은 가치와 이미지는 나병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 나환자 주변에 신성 불가침의 원이 그려지며, 이 인물의 사회적 중요성이 강조된다.
- 구조의 지속성:
- 나병이 사라진 후에도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계속 남아 있게 된다.
- 두세 세기 뒤에도 유사한 축출의 장치가 재발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사회적 축출의 지속성
- 사회적 축출의 개념:
- 나환자와 같은 인물의 사회적 축출은 그들의 가치와 이미지에 달려 있다.
- 나병 요양소가 비게 된 시대에도 나환자의 사회적 중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 축출의 의미:
- 나환자와 같은 인물은 가난한 자, 부랑자, 경범죄자와 같은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다.
- 이들에 대한 축출은 구원의 기대와 관련이 있다.
- 문화적 차원에서의 축출:
- 사회적 축출은 영적 재통합의 형태로 나타나며, 다양한 문화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 이러한 축출의 과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 나병의 대체:
- 나병이 사라진 후, 성병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 성병은 15세기 말에 나병의 뒤를 잇는 사회적 질병으로 부각된다.
광기와 나병의 유사성
- 광기의 역사적 맥락:
- 나병이 사라진 후, 광기가 새로운 강박관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 이 새로운 강박관념은 나병과 유사한 분할, 배제, 정화의 반응을 유발한다.
- 광기의 잠복기:
- 광기가 사회에서 통제되기 전에는 오랜 잠복기가 필요하다.
- 이러한 반응은 광기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 사회적 반응:
- 17세기 중엽, 광기에 대한 호의적 배려의 관습이 다시 나타난다.
- 광기는 르네상스 시대의 주요한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 구조의 지속성:
- 나병과 광기는 모두 사회적 축출의 대상이 되며, 이 구조는 시간이 지나도 지속된다.
광기와 죽음의 관계
- 죽음과 광기의 대체:
- 죽음의 주제가 광기의 주제로 대체되었다는 점은 중요한 변화이다.
- 이는 단절이 아니라 불안의 내부에서 형성된 왜곡을 나타낸다.
- 허무의 경험:
- 인간은 이제 허무를 외적이고 최종적인 종말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
- 이 허무는 내부에서 실존의 지속적 형태로 경험된다.
- 광기의 인식 변화:
- 과거의 광기는 죽음의 종말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 현재의 지혜는 광기를 드러내며, 죽음과 광기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 종말에 대한 무관심:
-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 무신경할 정도로 미쳤다는 점이 강조된다.
- 이는 세계의 파국이 가까워졌음을 나타내는 신호로 해석된다.
광기의 사회적 영향
- 광기와 허무의 관계:
- 15세기에는 광기와 허무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 이 관계는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 경험 속에서도 지속된다.
- 문학적 표현:
- 광기는 문학과 철학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 이는 인간의 약점과 꿈, 환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반영한다.
- 사회적 풍자:
- 광기는 민간의 풍자를 통해 인간의 무지한 자만에 대한 처벌로 나타난다.
- 이는 인간의 약점과 꿈, 환상에 연결되어 있다.
- 광기의 상징:
- 광기의 상징은 거울로 표현되며, 이는 인간의 자만을 반영한다.
- 거울은 객관적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광기의 본질과 이성
- 광기와 이성의 관계:
- 광기는 이성과의 가역적 관계를 형성한다.
- 모든 광기에는 이성이 존재하며, 모든 이성에는 광기가 내재되어 있다.
- 인간의 인식:
- 인간은 사물의 올바른 척도로 자신을 인식한다.
- 그러나 인간의 한정된 이해력은 진실을 드러내지 못한다.
- 진실의 반영:
- 외양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은 냉혹한 모순으로 나타난다.
- 이성에 비해 인간의 광기는 상대적으로 보잘것없다.
- 광기의 순환:
- 광기와 이성은 서로를 긍정하고 부정하는 관계에 있다.
- 이 상관성 속에서 두 개념은 서로를 보존하거나 소멸시킨다.
예술과 광기의 관계
- 예술의 창안:
- 예술의 창안은 착란된 상상력에서 기인한다.
- 화가, 시인, 음악가의 기발한 착상은 광기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 상상력의 형태:
- 광기를 통해 다양한 예술과 도덕의 가치체계가 문제시된다.
- 이는 인간의 상상력의 모든 형태와 연결된다.
- 문학적 모델:
- 광인은 하나의 문학적 모델로서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 오히려 광인은 상상적 일체감을 통해 자신을 인식한다.
- 절망적 정념의 광기:
- 절망적 정념의 광기는 사랑의 배신에서 비롯된다.
- 미친 사랑은 광기로 이어지며, 이는 외롭게 추구된다.
광인 구빈원의 등장
- 문학적 주제의 변화:
- 광인들을 태운 작은 배들의 운이 다한 후, 광인 구빈원이라는 문학적 주제가 나타난다.
- 이 주제는 머리가 빈 사람들이 진정한 이성의 질서에 따라 분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사회적 비판:
- 광인 구빈원은 사회적 비판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 이는 인간의 약점과 사회적 구조를 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 모순과 반어:
- 구빈원에서 사람들은 모순과 반어를 통해 각자의 언어를 말한다.
- 이는 사회적 풍자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 광기의 재조명:
- 광인 구빈원은 광기의 본질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 이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모순을 드러내는 중요한 주제이다.
🌹광기의 역사 제1부
💋제1장.(내용)
광인들의 배나병의 기이한 소멸은 아마 오랫동안 시행된 모호한 의료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격리로 인한 자연스런 결과, 그리고 십자군 전쟁이 끝나 감염의 근원지인 근동지방과의 교류가 단절됨에 따라 나타난 결과였을 것이다. 나병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병을 신성 불가침 영역 안에 존속시키고 나병을 어떤 전도된 열광상태 속에 붙들어놓기 위해 마련된 비천한 장소와 의례는 그대로 남긴 채, 나병이 물러난 것이다.
아마도 나병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 있고, 또한 나병 요양소들이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텅텅 비게 되는 시대에도 존속하는 것은 바로 나환자라는 인물에 달라붙은 가치와 이미지이고, 사람들이 인물의 주변에 신성 불가침의 원을 그린 후에야 비로소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축출의 의미, 이 인물이 사회집단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다.나병이 사라지고 나환자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거의 사라져도, 이러한 구조는 계속해서 남아 있게 된다.
두세 세기 뒤에도 이상할 정도로 유사한 축출의 장치가 동일한 장소들에서 숱하게 재발견되는 것이다. 예전에 나환자가 맡은 역할을 가난한 자, 부랑자, 경범죄자, 그리고 머리가 돈 사람이 다시 맡게 되면서, 우리는 이들과 이들을 축출하는 자들을 위해 이러한 축출에서 어떤 구원이 기대되었는가를 알게 된다.
형태들, 특히 사회적 축출이면서도 영적 재통합인 엄격한 분할의 그 주요한 형태는 아주 상이한 문화 속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띠고서 존속하게 되는 것이다.나병과 교대된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병이었다. 15세기 말에 성병은 마치 상속권에 의해서인 듯 일시에 나병의 뒤를 잇는다.
그런데 기이한 일은 17세기 이루어진 바와 같은 수용의 영향 아래, 성병이 의학의 맥락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나가고 광기와 더불어 도덕적 배제의 공간에 통합된 것이다. 사실상 성병에서가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의학으로 편입될 매우 복잡한 현상에서 나병의 진정한 유산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 현상은 바로 광기이다. 100년 동안의 공포라는 측면에서 나병의 뒤를 잇는 이 새로운 강박관념이 나병처럼 분할, 배제, 정화의 반응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오랜 잠복기가 필요할 것이지만, 이와 같은 반응은 명백히 광기와 연관되어 있다. 17세기 중엽 광기가 통제되기 전에, 광기에 대한 호의적 배려의 오랜 관습들이 다시 나타나기 전에, 광기는 이미 르네상스 시대의 모든 주요한 경험과 끈질기게 연결되어 있었다.
죽음의 주제가 광기의 주제로 대체되었다는 것은 단절의 표시가 아니라, 오히려 동일한 불안의 내부에서 형성된 왜곡을 보여준다. 문제는 변함없이 삷의 허무이지만, 이 허무는 이제 위협과 동시에 귀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외적이고 최종적인 종말로 인정되지 않고, 내부로부터 실존의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형태로 체험된다.
그래서 예전에 사람들의 광기는 죽음이라는 종말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 데에서 기인하였고, 죽음의 광경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예지를 잊지 않게 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에, 이제 지혜는 도처에서 광기를 드러내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도 죽은 자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 그리고 보편적이게 된 광기가 죽음 자체와 완전히 동일할 따름이고 이에 따라 종말이 가깝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게 된다.
사람들이 종말에 무신경할 정도로 미쳤다는 것을 나중에 보여주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시간과 세계의 종말이 아니고, 세계의 파국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광기의 증대, 광기의 은밀한 침입이며, 세계의 파국을 불러오고 세계의 파국을 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정신 이상인 것이다. 광기와 허무의 이러한 관계는 15세기에 매우 밀접하게 맺어져서, 오랫동안 존속하게 되고,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경험 한가운데에서 계속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은 미치광이의 경험은 비록 조형예술이나 문학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면서도 극단적 일관성을 띠는 것으로 보인다.세계는 보편적 광란 속에 빠져든다. 신도 악마도 승리하지 못한다. 승리는 광기의 것이다.도처에서 광기는 인간을 현혹시킨다. 광기로 인해 생겨나는 환상적 이미지들은 사물들의 표면에서 재빨리 사라지는 일시적인 외양이 아니다. 가장 특이한 망상에서 생겨나는 것은 이상한 역설에 의해, 대지의 내장 속에 비밀처럼, 접근 불가능한 진리처럼 이미 감추어져 있었다.
광기가 인간에 의해 독단적으로 전개될 때, 인간은 세계의 암담한 필연성과 마주치고, 인간의 악몽과 불편한 잠자리에서 자주 출몰하는 동물은 인간 자신의 본성이며,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행위의 덧없는 이미지들이야말로 세계에 대한 커다란 앎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질서와 광기의 세계에는 미리부터 잔혹한 종말의 윤곽이 드러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막연히 예감된 세계의 흉조와 비밀은 그토록 많은 이미지를 통해 표현되었는데, 그것들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 그것들의 환상에 그토록 광범위한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마 이 사실일 것이다.
광기에 관한 문학적, 철학적, 도덕적 주제들은 동일한 시대의 것이긴 하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다. 중세에는 악덜들의 위계에 광기의 자리가 있었다. 13세기부터 광기는 악덕과 미덕의 싸움에서 사악한 병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광기가 이러한 대수롭지 않은 자리를 떠나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제는 광기가 인간의 모든 약점이라는 유쾌한 무리를 이끈다. 광기는 명실상부한 우두머리로서 인간의 온갖 약점들을 인도하고 야기하며 이것들에 이름을 붙인다.
자. 이제 나의 동무들을 소개합니다...눈썹을 찡그리는 동무는 필라우티(자만심)입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눈웃음치고 손뼉을 치는 동무는 콜라시(아첨)입니다. 반쯤 잠들어 있는 듯한 동무는 레테(망각)입니다. 팔꿈치를 괴고 두 손으로 깍지를 끼어 머리를 기대고 있는 동뭄는 미조포니(게으름)입니다. 장미 화관을 쓰고 향유를 바른 동무는 에도네(관능)입니다. 눈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리는 동무는 아노이아(경솔)입니다.
살이 포동포동하고 얼굴빛이 화사한 동무는 트리페(나약)입니다. 그리고 이 젊은 여자들 사이에 두 명의 신이 있는데, 그들은 소중한 하녀와 깊은 잠입니다.광기는 민간의 풍자에 오랫동안 친숙한 주제에 따라, 앎과 어설픈 앎에서 기인하는 무지한 자만에 대한 희극적 처벌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광기는 세계와 세계의 숨겨진 형태들에 연결되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인간의 약점, 인간의 꿈과 환상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상상적으로 찬양함으로써, 자신의 광기를 신기루처럼 생겨나게 한다. 이제부터 광기의 상징은 거울일 것이다.
거울은 실제의 것을 비추기는 커녕 거울에서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자가 빠지는 자만의 꿈을 은밀하게 반영할 것이다. 광기는 객관적 진실이나 세계와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과 인간이 자기 자신의 진실로 인지할지도 모르는 모습과 관련된다.광기의 층위가 변하는데, 광기는 인간의 마음속에 생겨나며,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고 문란하게 한다. 광기가 도시를 지배할 때조차도, 사물들의 잔잔한 진실, 위대한 자연에는 광기의 흔적이 없다.
본질적인 것, 즉 삶과 죽음, 정의와 진실이 나타날 때 광기는 재빨리 사라진다. 모든 인간이 광기에 예속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광기의 지배는 언제나 보잘것 없고 상대적이다. 왜냐하면 현자의 시선에 광기의 초라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터이기 때문이다. 광기는 결정적인 말을 할 수 있지만 결코 진실과 세계에 대한 결정적 발언이 아니고, 광기를 정당화하는 담론은 단지 인간의 비판 의식에만 관련될 뿐이다. 그런데 16세기에 비판적 반성의 특권적 지위는 어떻게 확립되었을까? 어떻게 광기의 경험이 마침내 비판적 반성에 의해 몰수되어, 그 결과로 고전주의 시대의 문턱에서 이전 시대에 환기되었던 모든 비극적 이미지가 어둠 속으로 흩어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는 인간의 확대가 아니라 인간의 축소였다고 말하게 하는 이 흐름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광기에 대한 고전주의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을 이러한 변천의 관점에서 간략하게 요약하자. 광기는 이성과 관련된 형태가 된다. 광기와 이성은 영속적으로 가역적 관계를 맺는다. 이 가역적 관계로 인해 모든 광기에 이성이 있고 모든 이성에 광기가 있다. 인간은 스스로 분명하게 판단한다고, 인간 자신이 사물들의 올바른 척도라고 생각한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 인간이 세계에 대해 지니고 있다고 행각하는 인식에 힘입어 인간은 자기 만족 속에서 이러한 생각을 굳게 간직한다. 인간의 한정된 이해력에 의해서는 외양의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진실조차 드러나지 않으며, 인간의 광기를 통해서는 사물들의 이면, 사물들의 밤 같은 측면, 사물들의 진실과 직접적으로 모순되는 측면만이 드러난다.
인간은 신에게로 높아짐으로써 단순히 자기를 초월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본질 사이의 대립을 단번에 제압해야 한다. 왜냐하면 외양을 통해 드러나 보이는 진실의 모습은 진실의 반영이 아니라 냉혹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지혜에 비하면 인간의 이성은 광기일 뿐이었고, 사람들의 얄팍한 지혜에 비하면 신의 이성은 광기의 본질적 움직임 안에 놓여 있다.
큰 차원에서는 모든 것이 광기일 따름이고, 작은 차원에서는 전체가 그대로 광기이다. 다시 말해서 이성에 준거해서만 광기가 있을 뿐이지만, 이성의 참모습 전체는 이성에 의해 거부되는 광기를 이성이 한순간 나타나게 한다는 점, 그 결과로 이번에는 이성을 일소하는 광기 속으로 이성이 사라진다는 점에 있다. 15세기에 고조되었던 극심한 위험은 이런 식으로, 기독교 사상의 도도한 영향 아래 해소된다.
광기는 세계를 폭발시키고 환상적 마력을 드러내는 은밀한 동력이 아니고, 시대의 황혼기에 이르러 격렬한 동물성이나 앎과 금지의 큰 싸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광기는 이성에 결부되어 한없는 순환과정 속으로 들어가고, 광기와 이성은 서로를 긍정하고 부정한다. 이제 광기는 세계의 어둠 속에서 절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의 상관성 아래에서만 실재할 따름이다. 이 상관성 속에서 이성과 광기는 서로에 힘입어 보존되기도 하고 서로에 의해 소멸하기도 한다.
광기는 심지어 이성의 형태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광기는 어떤 때는 이성의 은밀한 힘들 가운데 하나를, 어떤 때는 이성발현의 계기들 가운데 하나를, 또 어떤 때는 이성이 이성 자체를 지각할 수 있는 어떤 역설적 형태를 구성하면서 이성에 통합된다. 아무튼 이성의 영역 안에서만 광기가 의미와 가치를 보유한다.인간이 갇혀 있는 비참한 처지, 인간으로 하여금 진실과 선에 다가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결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인간의 가장 나쁜 광기이다. 인간조건의 특징 자체인 이러한 비이성을 부정하는 것은 일찍이 인간의 이성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성이 있다는 것은 사실상 지혜와 광기의 이 연속적 순환 현상을 받아들이고 지혜와 광기의 상호성과 불가능한 분할을 뚜렷이 인식하는 태도에서 확인된다. 진정한 이성은 어떻게든 광기에 연루되어 있고, 광기가 내는 길로 마땅히 접어들게 되어 있다. 이성은 광기를 맞아들임으로써 은밀하게 광기를 둘러싸고 포위하며, 광기를 의식하고 광기를 위치시킬 수 있다.예술의 창안은 착란된 상상력에서 기인한다.
화가, 시인, 음악가의 기발한 착상은 그들이 자신들의 광기를 표현하기 위해 공손하게 완화시킨 이름일 뿐이다. 광기를 통해서는 어떤 다른 시대, 어떤 다른 예술, 어떤 다른 도덕의 가치체계가 문제시될 뿐만 아니라, 인간이 발휘하는 상상력의 모든 형태, 심지어는 가장 멀리 떨어진 형태들도 공통의 공상적 생각 속에서 뒤북박죽으로 뒤엉켜있는 것이다.그러나 광인이 하나의 문학적 모델에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
광인이 동일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며, 그것은 상상적 일체감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일체감에 힘입어 광인은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는 모든 자질, 모든 미덕 또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광기의 마지막 유형은 절망적 정념의 광기이다. 너무 지나쳐 실망만을 안겨준 사랑, 무엇보다도 죽음의 숙명성 때문에 배신당한 사랑은 발광 이외의 다른 출구가 없다. 미친 사랑은 대상이 있는 한 광기라기보다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정신착란의 허공 속에서 미친 사랑은 외롭게 추구된다.광기는 착각의 가장 순수하고 가장 완전한 형태이다. 광기의 상태에서는 거짓이 참으로, 죽음이 삶으로, 남자가 여자로, 연인이 복수의 여신으로, 그리고 희생자가 미노스로 착각된다. 또한 광기는 연극의 체계에서 착각의 가장 엄밀하게 필수적인 형태이다. 왜냐하면 광기가 진정한 결말로 다가가는 데에는 어떤 외부적 요소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광기의 착각을 진실로까지 밀고 나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처럼 광기는 구조의 한가운데에서, 자체의 역학적 중심에서, 비밀스런 재출발의 의미가 함축된 결과이면서 동시에 이성 및 진실과의 화해로서 나타나는 의미에서의 入門이다. 광인들을 태운 작은 배들의 운이 다한 후 고작 100여 년이 지나자, 곧 광인 구빈원이라는 문학적 주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머리가 빈 사람들이 진정한 이성의 질서에 따라 사슬 따위에 묶이고 분류된 상태로, 각자 예컨대 모순과 반어, 지혜와 분리된 언어를 말한다.
🌹광기의 역사 제1부
💋제2장. (요약)
광기의 역사적 맥락
- 르네상스 시대: 목소리가 풀려나온 시기이나, 폭력성이 제어된 광기는 고전주의 시대에 침묵으로 귀착하게 된다.
- 고전주의 시대: 이 시기에는 광기가 이상한 강제력에 의해 억압된다.
- 데카르트의 경험: 그는 꿈과 오류의 가능성을 통해 광기와 마주치며, 자신의 육체를 박탈할 위험을 인식한다.
- 광기의 본질: 광기는 사유의 불가능 조건으로, 누구나 의심을 통해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지만, 사유를 통해서는 미쳤다고 가정할 수 없다.
데카르트와 광기의 관계
- 데카르트의 회의: 그는 오류와 꿈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광기의 위험을 피하지 못한다.
- 감각의 속임수: 감각은 "거의 감지되지 않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만을 왜곡할 수 있으며, 진실의 잔재는 남아있다.
- 진리의 영속성: 진리의 영속성 덕분에 사유는 오류에서 벗어나거나 꿈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만, 광기로부터 사유를 보호하는 것은 미칠 가능성의 부정이다.
- 사유의 주체: 광기는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하는 주체의 본질에 속한다.
광기의 본질과 사유
- 사유의 불가능성: 광기는 사유의 불가능 조건으로, 사유를 통해서는 미쳤다고 가정할 수 없다.
- 17세기 수용시설: 이 시기에 새로 건립된 수용시설은 파리 시의 1% 이상의 주민이 몇 달간 갇혀 있었음을 나타낸다.
- 절대권력의 남용: 왕의 봉인장과 자의적 구금 조치가 남용되었으며, 이러한 관행이 어떤 법의식에 의해 실행되었는지는 덜 알려져 있다.
- 구빈원의 기능: 구빈원은 왕권과 연결된 시민 통제의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며, 부르주아지의 몫으로 관리된다.
구빈원의 역할과 기능
- 구빈원의 정의: 구빈원은 왕이 통치와 사법 사이에 세우는 기이한 권력기구로, 제3의 탄압기관이다.
- 구빈원의 목적: 구빈원은 질서와 군주제 및 부르주아 질서의 결정기관으로 기능한다.
- 공동 생활: 구빈원에서는 독서, 기도, 명상으로 나누어진 거의 관례적 생활이 영위된다.
- 구제와 탄압: 구제기관은 원호와 동시에 탄압의 기능을 수행하며, 가난한 사람들은 구제의 목적이면서도 감방과 유치 구역에 갇히게 된다.
고전주의 시대의 수용과 격리
- 수용의 개념: 고전주의 시대에는 수용이 구상되었으며, 이는 중세의 나환자 격리와 유사하다.
- 나환자의 사라짐: 유럽에서 나환자가 사라짐에 따라 비게 되는 장소는 새로운 인물의 차지였다.
- 수용의 다면성: 수용하는 활동은 정치, 사회, 종교, 경제, 도덕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 고전주의 시대의 구조: 이러한 의미들은 고전주의 시대의 세계 전체에 특유한 여러 구조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유럽 전역의 수용 현상
- 유럽의 현상: 이러한 수용은 유럽 전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프랑스에서는 절대왕정과 가톨릭의 결탁이 이 현상에 특별한 성격을 부여한다.
- 다양한 형태: 다른 지역에서는 이 현상의 아주 다른 형태가 나타나지만, 시간적 위치는 분명하다.
- 구제기관의 역할: 대규모의 구제기관과 수용시설은 고전주의 시대의 진상으로, 자선과 통치계획이 결합된다.
- 교도소의 설립: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최초의 교도소가 설립되며, 영국에서는 수용의 기원이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빈원의 사회적 의미
- 구빈원의 기능: 구빈원은 단순히 노화, 신체장애, 또는 질병으로 인해 일할 수 없게 된 이들을 위한 안식처가 아니다.
- 도덕적 책임: 구빈원은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원장에게는 탄압의 사법적이고 물리적인 도구를 사용할 권한이 주어진다.
- 윤리적 지위: 구빈원은 윤리적 지위를 가지며, 도덕적 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 강제 노역의 측면: 구빈원은 강제 노역장의 측면뿐만 아니라, 도덕적 과오를 징벌하고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
형벌과 도덕적 책임
- 형벌의 변화: 고전주의 시대의 대감호에서 형벌은 더 이상 법률에 따라 선고되지 않는다.
- 도덕성의 구역: 감금은 순수한 도덕성의 구역에서 이루어지며, 법은 감성을 지배하게 된다.
- 신체의 차원으로의 전환: 도덕적 원칙의 차원에서 신체의 차원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 수용제도의 창안: 수용제도는 17세기의 고유한 제도적 창안물로, 경제적 조치와 사회적 예방책으로 기능한다.
광기의 변화와 사회적 인식
- 광기의 논의: 과거에는 광기가 대낮에 논의되었으나, 반세기 후에는 갇히고 고립되었다.
- 문학적 예시: <리어왕>과 <돈키호테>에서 광기가 다루어졌음을 언급한다.
- 사회적 통합: 광기는 사회적 문제와 함께 인식되기 시작하며,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 광기의 경험: 광기의 경험은 노동의 의무와 연결된 모든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광기의 역사 제1부
💋제2장. (내용)
.
르네상스 시대에 목소리는 풀려 나왔지만 이미 폭력성이 제어된 광기가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상한 강제력에 의해 곧 침묵으로 귀착하게 된다.데카르트는 회의를 진전시키는 과정에서 꿈과 모든 형태의 오류 가까이에서 광기와 마주친다. 그는 오류에 빠질 때 바깥의 세계가 사라지거나 꿈속에서 의식이 잠들 수 있듯이, 미칠 가능성은 자신의 육체를 박탈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
어쩌다 내가 나를 광인들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이 손과 이 몸이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두뇌는 담즙의 검은 김으로 인해 그토록 혼란스럽고 흐리멍덩하여, 그들은 매우 가난한데도 왕이라 하고, 온통 발가벗고 있으면서도 휘황찬란한 비단옷을 입고 있다고 끊임없이 단언하기도 하며, 자신이 항아리라거나 몸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꿈이나 오류의 가능성을 교묘히 회피하는 것과는 달리 광기의 위험을 피해가지 못한다. 감각은 속이는 것이라 해도 사실 "거의 감지되지 않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만을 왜곡시킬 수 있을 뿐이며, 감각에 의한 착각의 효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진실의 잔재, 가령 "내가 여기 난로 가에 설렁한 실내복을 입고 않자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진리의 영속성 덕분으로 사유가 오류에서 벗어나거나 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광기로부터 사유를 보호하는 것은 진리의 영속성이 아니라, 미칠 가능성의 부정이다. 광기의 불가능성은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하는 주체의 본질이다. 누구나 懷疑의 어떤 건거를 찾기 위해, 자신이 꿈을 꾼다고, 또는 자신이 꿈꾸는 주체와 동일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진리가 여전히 꿈의 가능조건으로 나타난다.
이와 반대로 사유를 통해서조차 미쳤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광기는 바로 사유의 불가능 조건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보다 덜 괴상하지 않을 것이다..."17세기 거대한 수용시설들이 새로 건립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파리 시의 주민 중에서 1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몇 달에 걸쳐 거기에 갇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절대권력이 귀양이나 투옥 따위를 명하는 왕의 봉인장과 자의적 구금 조치를 남용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와 같은 관행이 어떤 법의식에 의해 실행되었는가는 덜 알려져 있다. 구빈원은 왕이 통치와 사법 사이에, 법의 한계지점에 세우는 기이한 권력기구, 즉 제3의 탄압기관이다.
구빈원은 기능이나 목적에 비추어, 어떤 의료 관념에도 연결되지 않는다. 구빈원은 질서, 그 동일한 시대에 프랑스에서 조직되는 군주제 및 부르주아 질서의 결정기관이다. 구빈원은 왕권과 연결된 시민 통제의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된다. 구빈원의 관리는 무엇보다도 부르주아지의 몫이다. 그렇지만 이 서설들 각각에서는 독서, 성무일과, 기도, 명상으로 나누어진 거의 관례적 생활이 영위된다. 공동 침실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다함께 기도를 드리며, 하루에 여러 시간대별로 신앙심의 실천, 기도, 영혼을 함양하기 위한 독서가 행해진다.
게다가 이 구제기관들은 원호와 동시에 탄압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구제하는 것이 목적이면서도 거의 모든 곳에 감방과 유치 구역이 설치되어 있다. 중세에 나환자 격리가 이뤄진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고전주의 시대에는 수용이 구상된 것이다. 유럽 세계에서 나환자가 사라짐에 따라 비게 되는 장소는 새로운 인물의 차지였다. 즉, 그들은 피수용자이다. 나환자 수용소는 의료의 의미만을 띤 것이 아니었다.
저주의 공간을 여는 그 추방의 행위에는 다른 많은 기능이 개입되었다. 수용하는 활동 역시 단순하지 않다. 여기에서도 정치, 사회, 종교, 경제 , 도덕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의미가 발견된다. 그리고 이 의미들은 필시 고전주의 시대의 세계 전체에 특유한 여러 구조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수용은 유럽 전체의 현상이다. 프랑스에서는 반종교개혁의 시대에 절대왕정이 성립되고 가톨리이 활기차게 부흥함으로써, 권력과 교회 사이의 경쟁과 동시에 결탁이라는 매우 특별한 성격이 이 현상에 부여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이 현상의 아주 다른 형태들이 나타나지만, 이 현상의 시간적 위치는 그만큼 분명하다. 대규모의 구제기관, 수용시설, 종교활동과 공공질서의 유지, 구제와 처벌, 자선과 통치계획은 바로 고전주의 시대의 진상이다. 즉, 고전주의 시대만큼 보편적이고 고전주의 시대의 출현과 거의 동시대적이다.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교도소가 창설되는데, 최초의 교도소는 프랑스의 수용시설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이며, 1960년에는 함부르크에 교도소가 개설된다. 영국에서는 수용의 기원이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도소의 유지비는 세금으로 충당하게 되어 있지만, 일반인들의 자발적 기부가 장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적으로 교도소를 설립하려는 시도의 허용이 몇 년 뒤에 결정된 점으로 보아, 이러한 조치는 사실상 전혀 실행되지 않았던 듯하다. 즉, 구빈원이나 교도소를 개설하기 위해 관청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누구나 마음대로 구빈원이나 교도소를 설립할 수 있다. 17세기 초에는 전반적인 개편이 이루어진다.
재판권 관할지역에서 이와 같은 개정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모든 치안판사에게는 5파운드의 벌금이 부과되고, 교도소의 유지에 도움이 되고 교도소의 입소자들에게 일거리를 확보해주는 작업장, 제조소(제분, 방적, 직조)의 설치가 의무화되며, 누가 거기로 보내질 만한가를 결정할 권한이 재판관에게 부여된다. 이러한 교도소의 확대는 대단하지 않았다. 흔히 교도소들은 인접해 있는 감옥으로 흡수되었고, 교도소의 관행은 스코틀랜드로 확대되지 못한다. 반대로 구빈원은 더 큰 성공이 예정되어 있었다.
구빈원은 17세기 후반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1670년 법령에 의해 구빈원의 지위가 명확히 규정되고 구빈원의 운영을 위한 세금징수와 회계관리를 감시하는 일이 사법관에게 맡겨지며 구빈원 관리에 대한 최고의 감독권이 치안판사에게 부여된다. 몇 년 사이에 하나의 전체적 조직망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나날이 또는 거의 수시로 나환자보다 더 가혹하게 유폐되고 내쫓기는 그 모든 사람을 가로질러 목표로 삼은 현실은 무었이었을까?
파리의 구빈원이 생기고 몇 년 지나지 않아 파리 인구의 약 1%에 달하는 6천 명의 사람들이 거기에 집결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유럽 문화에 거의 공통되고 17세기 후반에 갑자기 발현된 문턱에 도달한 사회적 성향은 은연중에 그리고 아마 여러 해에 걸쳐 형성되었음이 틀림없다. 즉, 수용장소에 거주할 운명에 놓여 있는 그 부류의 사람들을 단번에 격리시킨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사회적 성향이다. 우리의 눈에는 기이하게 뒤섞이고 혼잡하게 보이는 일단의 사람들이 나병의 소멸로 인해 오래 전부터 버려져 있는 황량한 장소에 거주하도록 지정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단지 미분화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그러한 성향이 확실히 고전주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분명하게 정리된 인식방법이었다. 이성의 특권으로 규정하는 것이 관례인 시대에 사람들이 광기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졌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식 방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용의 공간을 설정하면서 이 공간에 격리의 권한을 부여했고 광기에 새로운 출생지를 지정한 행위는 아무리 일관성 있고 합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할지라도 단순하지 않다.
빈곤과 구제의 의무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 실업과 무위도식이라는 경제문제 앞에서의 새로운 반응형태, 새로운 노동윤리, 그리고 속박의 강압적 형태 아래, 이 활동은 도덕적 의무가 민법과 일치할 삶의 공간에 대한 꿈을 하나의 복합적 단위 안에서 조직해내는 것이다. 이 주제들은 수용 단지의 건설과 조직화에 어렴풋이 스며들어 있다. 수용의 실천에 의미를 부여하고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고 경험되었는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이 주제들이다.
수용방안의 실천은 빈곤에 대한 새로운 처방이자 새로운 각오이고, 더 넓게는 인간의 삶에 있을 수 있는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또 다른 관계설정을 가리킨다. 중세에는 가난한 사람, 비참한 처지의 사람, 자기 자신의 생활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이 특별한 모습으로 취급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16세기에 달라진 것이다.르네상스 시대에는 빈곤의 신비로운 특성이 제거되어버렸다. 이는 가난의 절대적 의미를 없애자는 것과 가난을 구제했다는 데에서 자선에 가치를 부여하던 관행을 없대자는 두 가지 사상적 흐름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 전체가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시행된 대감호를 승인한다. 이 사실로써 가난한 사람은 더 이상 하느님이 기독교의 자비를 불러일으켜 그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구실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게 된다. 모든 기독교인은 투르의 대주교를 본떠서 가난한 사람을 동정심의 원인인 물질적 빈곤 때문이라기보다는 혐오감을 자아내는 영적인 비참 때문에 국가의 쓰레기 같은 존재로 보기 시작한다. 교회는 방침을 세웠고, 그렇게 함으로써 중세에는 전체적으로 신성시되었던 빈곤으로부터 기독교 세계를 떼어놓았다.
중세의 광인은 악마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성스러운 인물로 여겨졌다고 말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잘못된 것도 없다. 광인이 신성한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광인이 중세의 자선과 관련하여 빈곤의 모호한 세력권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사람보다 더 광인이 동정을 유발했을 것이다.예전에 광인이 사회에 받아들여진 것은 그가 다른 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광인이 배제되는 까닭은 그가 바로 이곳에서 생겨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 궁핍한 사람, 부랑자 사이에 끼기 때문이다.
실업자들이 수용시설에 흡수된 것은 무엇보다도 실업자들의 비참한 형편을 가리고 실업자들의 동요로 인해 야기될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난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업자를 의무 작업장으로 몰아넣은 시기에도 인근 지역이나 유사부문에서는 실업이 증가했다. 물가에 대한 영향으로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제조된 물품의 매매가격이 수용 자체로 인해 발생한 비용을 감안한다면 실제 원가와 비교도 안 되기 때문에, 작위적일 수밖에 없었다.수용시설의 기능적 가치만을 고려할 때 수용시설의 설립은 실패로 인정될지 모른다.
극빈자들의 수용기관 겸 빈곤의 감옥으로 기능한 수용시설이 19세기 초에 거의 유럽 전역에서 사라짐으로써 이 시설들의 최종적 실패는 공식적으로 확인될 것이다. 이 시설들은 효율성 없는 과도한 대책, 산업화의 태동에 편승하여 마련되었으나 결국 매우 부적절하게 구현된 사회적 예방책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실패를 거쳐 고전주의 시대는 돌이킬 수 없는 경험을 한 셈이다.
남녀 걸인들 중에서 많은 수가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고 그들의 많은 자식이 세례를 받지 않았으며 거의 모두가 종교에 대한 무지, 성사에 대한 경멸 속에서 온갖 종류의 악덕을 습관적으로 끊임없이 행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자선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 만큼 구빈원은 단순히 노화, 신체장애, 또는 질병으로 인해 일할 수 없게 된 이들을 위한 안식처로 보이지 않는다. 구빈원에는 강제 노역장의 측면뿐만 아니라 이보다는 오히려 도덕의 어떤 공백 부분, 다시 말해서 재판소에 회부될 만하지는 않지만 준엄한 회개만으로는 고칠 수 없을 과오를 징벌하고 바로잡을 책임이 있는 기관의 측면이 있다.
이처럼 구빈원은 윤리적 지위를 갖는다. 구빈원의 원장이 맡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도덕적 책무인데, 원장들에게는 탄압의 사법적이고 물리적인 도구 전체를 사용할 권한이 주어진다. 그들은 허가, 지시, 행정, 치안, 재판, 제벌, 징벌의 모든 권한을 갖는다. 그들이 이 책무를 원할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처형용 기둥과 수감용 쇠고리, 유치장과 지하감옥이 그들의 재량에 맡겨진다.고전주의 시대의 이 대감호에서 본질적인 것이자 새로운 귀결인 것은 형벌이 더 이상 법률에 따라 선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순수한 도덕성의 구역에서 감금이 행해지는데, 거기에서 법은 감성을 지배하게 되어 있을 것이고 타협도 경감도 없이 엄격한 신체 속박의 형태로 적용될 것이다. 도덕적 원칙의 차원에서 신체의 차원으로 전환될 가능성,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고, 강제성도 없고, 권력 남용도 없이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추정된다. 수용제도는 17세기의 고유한 제도적 창안물이다. 그것은 중세에 실행될 수 있었던 그러한 유폐와 공통된 측면이 없을 만큼 큰 규모로 곧 확산되었다. 수용은 경제적 조치 겸 사회적 예방책으로서 창안물의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 비이성의 역사에서 수용은 결정적 사건, 말하자면 광기가 가난, 노동 불능, 집단 속으로의 통합 불가능성이라는 사회적 지평 위에서 지각되는 게기, 광기가 국가문제와 함께 짜여지기 시작하는 계기를 보여준다. 가난에 부여된 새로운 의미, 노동의 의무에 주어진 중요성, 그리고 노동의 의무에 연결된 모든 가치가 멀리에서 광기의 경험을 결정하고 광기의 의미를 굴절시킨다.얼마전까지만 해도 광기는 대낮에 논의되었다. <리어왕>을 보라. <돈키호테>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반세기도 안 되어 광기는 갇히고 고립되었으며 수용의 요새에서 이성에, 도덕규범에, 그리고 도덕규범의 획일적 어둠에 묻혀버렸다.
#태그 #광기의역사 #미셸푸코 #철학 #정신건강 #사회적문제 #도서리뷰 #독서후기 #인문학 #정신병리학 #가치있는독서 #권력과지식
이런 자료를 참고 했어요.
[1] NAVER - 광기의 역사 (1 부) - 미셸 푸코 (https://blog.naver.com/yet_vain/222062957758?viewType=pc)
[2] 티스토리 - 광기의 역사 - Journal of Quixote - 티스토리 (https://homenaje.tistory.com/635)
[3] NAVER - 미셸 푸코 - 『 광기의 역사 』 제 1부 내용정리 (https://blog.naver.com/mythol/222842461407?viewType=pc)
[4] 의료기기뉴스라인 - 광기의 역사 (http://www.kmdi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41)
'스토리텔링 > 창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풍의 언덕 (3) | 2024.10.22 |
---|---|
키다리 아저씨 소개 (0) | 2024.10.21 |
기리노 나쓰오의 "그로테스크" (4) | 2024.10.21 |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소개 (1) | 2024.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