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이야기 배경 학교 생활과 일진에게 매맞는 준우
준우와 소희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일상은,
한국의 전형적인 도시형 일반계 고등학교처럼
치열함과 나른함이 공존하는,
반복적이면서도 미세하게 변하는
리듬으로 흘러갔다.
학교는 서울 외곽 신도시와 구도심이 맞닿는 ,
경계 지점에 있었다.
1970년대 지어진 4층 건물에 ,
2010년대 증축된 별관이 붙어 있어서,
복도는 어딘가 어색하게 이어지고,
계단 난간은 세월의 녹이 슬어 있었다.
운동장은 작았고,
철망 너머로 바로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아침 8시 10분쯤이면 교문 앞에,
자전거와 킥보드가 우르르 몰려들었고,
지각생들이 “선생님! 한 번만요!” 하며,
뛰어 들어오는 소리가 매일같이 울렸다.
교실은 3층 2학년 8반.
창가 쪽이 준우와 소희 자리였다.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시간대에는,
책상 위에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오후 4교시쯤 되면,
반대쪽 창으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눈이 부셔
대부분의 학생들이 커튼을 쳐놓고 싶어 했다.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이 약해서,
선풍기를 돌려도 더웠고,
겨울이면 복도 창문 틈으로,
찬 바람이 새어 들어와 발이 시렸다.
아침 1교시 전 10분은 사실상,
‘진짜 쉬는 시간’이었다.
종이 울리기 전부터 이미
- 뒷줄 애들은 책상 위에 엎드려
이어폰 꽂고 잠
- 창가 그룹은 창틀에 기대서,
담배 냄새 풍기는 척하며 폰 게임
- 여학생 몇은 화장실 가서 립밤 바르고 사진 찍기
- 준우는 조용히 창밖을 보며 커피 우유 한 모금씩 마심
- 소희는 대부분 늦게 들어와서 가방 툭 던지고
자리에 앉아 턱 괴고 멍 때림
쉬는 시간 10분마다 복도는 전쟁터였다.
“야 물 떠와!”
“이번 시험 범위 어디까지야?”
“저 새끼 또 숙제 안 해왔대 ㅋㅋㅋ”
계단에서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
화장실 앞 여학생들 줄 서 있는 소리,
체육시간 끝난 3학년 선배들이,
복도에서 농구공 튕기는 소리까지
모두 뒤섞여 시끄러웠다.
점심시간은 12시 20분~1시.
급식실은 지하 1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계단으로 내려가야 해서
학생들이 “또 고장 났어?” 하며
투덜거렸다.
급식 메뉴는 늘 비슷했다.
월: 돈까스+미역국
화: 제육볶음+콩나물국
수: 생선구이+된장찌개
목: 떡볶이+어묵국 (이 날이 제일 인기 많음)
금: 칼국수 or 짜장면 (랜덤)
급식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준우는 항상 소희의 트레이를 슬쩍 받아 들고,
소희는 툴툴거리면서도 따라왔다.
“야, 나 혼자 먹을 수 있거든?”
“알아. 근데 네가 들면 떨어뜨릴 것 같아서.”
오후 수업은 대부분 졸음과의 전쟁이었다.
5교시쯤 되면 반 전체가 나른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에는,
체육 수업 중인 다른 반 애들이 공 차고 있고,
교실 안은 에어컨 소리와 선생님 목소리만이
낮게 깔렸다.
준우는 그 시간에 가장 자주 멍 때렸다.
소희는 책상에 엎드려 팔뚝에 얼굴 묻고
잠을 자거나,
아니면 핸드폰을 무릎 아래 숨겨서
웹툰을 봤다.
방과 후가 되면 분위기가 또 달라졌다.
자율학습 신청한 애들은 9시까지 남고,
대부분은 5시 반~6시 사이에 슬슬
짐 싸기 시작했다.
준우는 늘 마지막까지 남아 소희가 가방
챙기는 걸 기다렸다.
소희는 “빨리 안 가?” 하면서도,
준우가 가방 들어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비 오는 날은 학교 전체가 달라졌다.
복도에 젖은 운동화 자국이 길게 이어지고,
우산을 털어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교실 창문은 뿌옇게 김 서리고,
형광등 불빛이 습한 공기 속에서
희뿌옇게 퍼졌다.
그럴 때면 소희는 더 말수가 적어졌고,
준우는 더 조용히 그녀의 곁을 지켰다.
이 학교의 하루는
시험 기간의 긴장감,
축제 준비의 설렘,
겨울 방학 직전의 나른함,
장마철의 축축함,
그리고 그 모든 계절 속에서
준우와 소희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서로의 빈틈을 채워가는 ,
그런 일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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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비가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 방과 후였다.
운동장 뒤편, 체육창고와 철망 사이의 구석진 공간.
그곳은 학교의 사각지대,
누군가의 비명조차 묻힐 만한
어두운 골목 같은 곳이었다.
태민 패거리는 이미 그 자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태민을 선두로 세 명의 녀석들이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고,
그들의 시선은 교문을 나서려던
준우를 노리고 있었다.
“야, 준우. 이리 와 봐.”
태민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준우는 걸음을 멈췄다.
이미 눈치챘다.
최근 태민 패거리의 시선이 날카로워진 게
느껴졌으니까.
소희가 태민의 고백을 거절한 뒤부터,
그들의 대화 속에 준우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저 새끼가 왜 소희 옆에 붙어 다녀?’
‘소희가 저런 찐따를 왜 챙겨?’
준우는 그 소문을 들었지만, 무시했다.
소희 곁에 있는 게 중요했으니까.
태민이 다가오며 어깨를 툭 쳤다.
“얘기 좀 하자.”
준우는 고개를 저었다.
“할 말 없어.”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준우의 팔을 거칠게 잡아챘다.
“씨발, 따라오라고.”
준우의 몸이 끌려갔다.
저항할 틈도 없이,
패거리가 그를 둘러싸고
체육창고 뒤로 데려갔다.
비에 젖은 땅바닥이 진흙탕이 되어
운동화가 미끄러지며 발이 헛디뎠다.
철망에 등을 떠밀리자,
차가운 금속이 등허리를 찔러왔다.
통증이 스쳤다.
태민이 먼저 주먹을 날렸다.
준우의 뺨을 정통으로 맞혔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비소리 속에 섞였다.
머리가 한쪽으로 홱 돌아가며,
입안에 피 맛이 번졌다.
짭짤하고 메스꺼운 그 맛.
“이 새끼, 요즘 소희랑 붙어 다니는 꼴 보니까
기분 좆같네.”
태민의 목소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가 이글거렸다.
몇 번이나 소희에게 사귀자고 했는데,
소희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너희랑은 안 어울려.
난 준우가 있어. 준우만 좋아해.”
그 한 마디가 태민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오해를 샀다.
소희가 준우를 좋아한다고?
그 찐따 같은 놈을?
태민 패거리는 그날부터 준우를 곱지 않게 봤다.
몇 번을 벼루다,
오늘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준우와 소희가 함께 집에 가지 않고,
어쩐일인지 둘이 떨어져 있었다.
준우가 소희 보다 먼저 교문을
나서는 것을 본 것 이였다.
“소희가 네 새끼 때문에 나한테
그렇게 말한 거 알아?”
태민이 멱살을 잡아챘다.
준우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너 같은 새끼가 왜 소희 옆에
붙어다녀?
씨발, 떨어져.
안 떨어지면··· 알지?”
준우는 대답 대신 태민의 눈을 똑바로 봤다.
“그건··· 소희가 결정할 일인데.”
그 말에 태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먹이 다시 날아왔다.
이번엔 배를 노렸다.
퍽- 퍽- 연속으로.
숨이 턱 막혔다.
준우의 몸이 구부러지며 무릎이 꺾였다.
뒤에서 다른 녀석이 등을 발로 찼다.
땅바닥에 쓰러지자, 진흙탕이
얼굴에 튀었다.
차갑고 끈적한 흙이 입술에 묻혔다.
태민이 웃으며 내려다봤다.
“이 새끼, 독종이네.
소희 옆에서 떨어지라고.
다음에 또 붙어 다니면,
진짜 죽여버린다.”
마지막으로 태민이 코를 걷어찼다.
코뼈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피가 터져 나왔다.
붉은 피가 비와 섞여
땅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패거리가 사라진 뒤,
준우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전신이 욱신거렸다.
입안의 피 맛, 배를 쥐어짜는 통증,
뺨의 뜨거운 열기.
‘소희가··· 알면 화낼 텐데.’
그 생각에 준우는 피식 웃었다.
통증이 더 세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소희는 여전히 학교에 남아 있었다.
준우의 문자가 이상해서,
교실을 나서려다 운동장 쪽으로
시선이 갔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체육창고 뒤편에 웅크린 그림자가 보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준우···?”
소희는 우산도 없이 뛰었다.
진흙탕이 운동화를 적시고,
비가 얼굴을 때렸다.
차가운 물방울이 눈가를 스치며
시야를 흐렸다.
체육창고 뒤에 도착했을 때,
준우는 철망에 기대 앉아 있었다.
부은 뺨, 터진 입술, 코피 자국이
셔츠를 물들인 모습.
소희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야, 이 새끼.”
목소리가 떨렸다.
준우가 고개를 들었다.
부은 눈으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소희야··· 왜 안 갔어?”
그 미소가 소희의 가슴을 찔렀다.
아프다.
너무 아파서, 화가 치밀었다.
“멍청이 새끼야···”
소희는 무릎을 꿇고 앉아
준우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뜨거운 뺨이 손바닥에 닿자,
눈물이 솟구쳤다.
“누가 이랬어? 태민 그 새끼지?
씨발, 왜···
왜 나 때문에 맞고 다녀?
내가···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왜 이렇게까지··· 바보같이···”
가슴이 미어졌다.
준우의 피 묻은 셔츠를 보자,
태민 패거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놈들이 소희를 노리고,
준우를 타겟으로 삼은 거.
소희의 그 한 마디 때문에.
‘준우만 좋아해.’
그 말이 준우를 이렇게 만들었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내 탓이야.
나 때문에··· 이 멍청이가···’
소희는 눈물을 삼키며 준우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멍청이··· 진짜 멍청이야.
왜 안 피하고, 왜 맞아?
아프잖아···
씨발, 나도 아파···”
목소리가 갈라졌다.
가슴이 저려왔다.
준우의 체온이 손을 통해 전해지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소희는 준우의 품에 안겨,
작게 흐느꼈다.
비가 그들의 등을 적셨지만,
그 순간 소희의 가슴은 뜨거웠다.
아픔과, 사랑과, 후회로 가득 차서.
준우는 천천히 소희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소희야.”
“닥쳐. 안 괜찮아.”
소희는 울면서도 준우를 일으켜 세웠다.
“집에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둘은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소희의 어깨에 기대는 준우의 무게가,
오늘만큼은 소희의 가슴을 더 무겁게,
그러나 따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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